도서 소개

김미순 시집의 사유를 따라가 보면 그 친절한 방관 속에서 물질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를 건너고 운동의 방향을 틀기도 하며 덜컥 빠지고 과거와 현재를 시차 없이 겹쳐놓으며 다만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미래에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어떤 존재, 물질들의 소멸뿐이라는 듯 모든 물질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감히 예단하려 들지 않는다.가장 넓은 대륙꽃물에 젖는 나비 순환하는 사이로 초록이 말라가는 날개동그랗게 말아진 기록 뭉치 몸을 펼치고세속적인 폭포수 안으로 나비가 떨어진다난자 동결 비용과 시간의 지면을 뚫고 나오는 방은 예상했던 것보단 까다로워, 시작이라는 말보다 열매가 열릴까요, 질문이 동그랗게 굴러다닌다제발 공난포만 아니길적당한 운동과 음식조절 그리고 간절그리고 또 간절히 기도한다배꼽 밑에 주삿바늘로 수를 놓아 단단한 꽃멍 든다초저출산 문제 해결 전문의도 한마음 되어꽃 이파리 따다 접으면 달콤하게 부풀어 올라 생긋 웃을피사체 말리는 방법에 위로가 되다니 가느다란 뿌리가 혈액처럼 가족을 찾아 뻗어가기를
쇠백로을숙도에 쓰레기 쇠백로가 둥지를 틀었어요토사가 쌓여 만들어진 섬에 대형 조형물은 비밀의 상징이에요텃새로 눌러앉은 여름 철새 쇠백로 눈에서 개구리가 수없이 튀어나와요개구리가 쇠백로 날개를 꽉 붙잡고 푸들푸들 뛰어요거리를 갉아먹는 소리따뜻함은 품의 원형이에요 페트병 파빌리온 제작을 기획한 쇠백로의 구조는 환경 파괴의 표상이지요낙동강 머금은 생태공원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어떡하면 좋을까요 공해 없는 새들의 낙원에 객들이 쳐들어와 불필요함을 만들어요 아무리 높이 올라도 방향을 조금만 틀면 누런 페트병이 둥둥 떠내려와 지구를 병 속에 가둬요쓰레기 물고 있는 물주름 속에 많은 죽음들은 복원되지 않고 끝없는 습지만 걷는 여름 죽음들이 배열되어 있는 흰 침대를 생각하며 뒤집힌 주파수는 힘센 오염뿐이에요
캐리어남포동 옛 구둣방 골목에서 캐리어를 끌다가 바퀴가 빠져 버렸다 어둠이 질퍽거리는 자갈치까지 캐리어를 달래어왔다 북적거리는 인파가 못마땅한 듯 눈을 내리깔고 삐딱하게 앉아 있는 캐리어 세계지도 어디쯤 비린내 나는 골목에서 여행이 고장 나 있다 캐리어가 멈추어 있다 불안한 길 위에서 캐리어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다 나도 캐리어를 따라가지 않는다짐을 풀어야 하는 곳이 여기일까 여행은 고장 나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눈에 보이는 풍경을 따라간다 사람들의 뒷모습과 앞모습이 엉킨다 어떤 물고기는 배가 갈라진 채 값이 올라가고 어떤 물고기는 겹겹이 계단을 쌓고 있고 어떤 물고기는 파도의 기억을 다 말려서 제값을 치르고 있다사람들의 말이 서로 엮여서 유니크한 랩을 한다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이 오래된 랩을 하며 질퍽거린다 꼼장어가 몸을 뒤틀며 랩을 한다캐리어가 아까부터 삐딱한 어깨로 리듬을 탄다 멈춘 곳이 짐을 푸는 곳 짐을 푸는 곳이 마음을 푸는 곳 나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꼼장어처럼 유연해지고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미순
필명 금미. 2015년 신라문학상 시 부문 대상으로 『월간문학』 등단. 시집으로 『꿀벌펜션』 『참치 하역사』 『브레이크』 『파란 장미 속에는 등장인물이 빠져 있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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