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항로 조정을 요구합니다.
테라포밍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요.”
고대했던 행성 착륙을 눈앞에 두고 분분해진 아이들의 의견과학이 발달하고 삶의 방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진 근미래. 이제 정자와 난자의 세포 결합으로 여성의 자궁을 통하지 않고 배양기에서도 아이가 태어날 수 있을 만큼 과학기술이 발달했으나, 그동안 지구 환경은 많이 척박해져 더 이상 지구는 인간이 살기 힘든 곳이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구의 대체행성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그 중대한 과업을 이행할 이들로 아직 세포 상태의 배아들이 우주선에 실렸다. 이들은 우주선 안에서 태어나 선내에서 생활하며 테라포밍과 대체행성인 보미나리에 대해 배우고, 보미나리에 착륙한 이후에는 그곳을 지구 생물이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 갈 예정이다. 이렇게 “대의적으로는 인류의 진출을 도모하고, 그보다 작게는 우리 가족들이 좁디좁은 지구를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짊어진 중요한 사명이다. 그러나 보미나리 착륙을 눈앞에 두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근본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과연 보미나리를 개척하는 것인 맞는가?’
개척은 파괴의 또 다른 길이라며 반대하는 아이들과, 테라포밍을 통해 인류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설전이 벌어지고, 결국 우주선의 항로 변경을 두고 토론이 시작된다.
이대로 두 달 정도 가면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우주선 세찬미르는 보미나리의 중력에 이끌려 그 주위를 도는 원형 궤도에 안착할 것이었다. 그런데 항로를 다시 조정하자니?
“도대체 어디로?”
소월 누나가 모두를 대표해 물었다.
“우주로.”
형이 대답했다. 반란의 시작이었다. _본문 중에서
팽팽하게 의견이 갈리는 ‘분리파’와 ‘잔존파’ 사이,
스노볼처럼 소중한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당연히 보미나리로 가서 테라포밍을 해야지 별다른 대안이 있어?’라고 생각했던 ‘노민’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의 의견은 의외로 팽팽하게 갈린다. 이미 선내 무중력에 길들여진 터라 중력이 작용하는 보미나리에 다시 적응하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보미나리에 정착한 이후에는 테라포밍을 하는데 몇 년이 걸릴지, 몇십 년이 걸릴지, 그렇게 테라포밍을 한다 해도 성공적으로 끝날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 그렇게 언제 끝날지 모를 노동을 하느니 그냥 계속 우주를 떠돌고 자원을 재활용하면서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아이들 사이에 퍼진 것이다.
이렇게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 아이들의 전권 대리인이자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 의무가 있는 홀로그램 AI ‘엘턴’은 이 문제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이미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가진 아이들을 억지로 데려갈 수도 없을뿐더러, 아이들의 말처럼 아이들이 우주선에 타게 된 데에는 아이들의 (생물학적) 부모의 동의만 있었을 뿐 정작 중요한 아이들 본인의 동의는 없었다는 걸 엘턴 또한 인정하기 때문이다. 앨턴은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해결을 위해 토론의 장을 만들어 아이들이 서로를 설득하고자 했고, 그때부터 “보미나리로 가지 말고 계속 우주선에서 살아야 한다”는 ‘분리파’와 “보미나리로 가서 예정대로 테라포밍을 해야 한다”는 ‘잔존파’로 갈려 팽팽한 힘겨루기를 시작한다.
한편, 열다섯 동갑 친구인 ‘파란’을 좋아하는 노민의 마음속은 어지럽기만 하다. 지금 파란의 마음이 어떨지 도통 짐작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축가를 꿈꾸는 노민은 어서 보미나리로 내려가 진짜 건물과 도로를 짓고 싶은데, 파란 역시 보미나리로 가고 싶을까? 매일 춤에만 열중하는 파란의 마음은 온통 춤 생각뿐일 텐데, 그렇다면 파란도 보미나리에 내려가 커다란 무대에서 춤을 추고 싶지 않을까? 노민은 파란과 함께 보미나리로 내려가면 그녀에게 멋진 무대를 선물하리라 다짐하며, 파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방법을 고심한다. 그건 바로, 파란의 피규어를 넣은 스노볼을 선물하는 것! 투명한 구 안에 물과 글리세린을 채우고, 거울을 부숴 반짝이도 만들고, 파란과 똑 닮은 피규어는 캐드CAD 프로그램을 이용해 3D 모델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파란에게 스노볼을 선물하기로 한 날, 노민은 15년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낸다.
“이게 뭐야?”
“스노볼.”
“스노볼.”
파란이 나지막이 발음하더니 이어 말했다.
“이걸 그렇게 부르는구나. 너무 예쁘다. 스노볼이란 이름도 예뻐.”
파란은 스노볼을 조심스레 돌려가며 살펴보더니 살짝 흔들다가 코를 박고 안을 들여다보고 또 흔들다가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또렷이 뜬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로. _본문 중에서
목적에 대한 질문도, 충분한 합의도 나누지 못한 채
임무만 지니고 살아가는 아이들,
그러나 그들의 마음 속에는 각자의 꿈이 빛나고 있었다.‘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 『너는 스노볼 속에』는 작가가 과거 단편으로 썼던 작품을 장편으로 개작한 것이다. 분량이 확보된 덕분에 작가는 다양한 아이들의 생각과 갈등을 좀 더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 작품엔 노민과 파란뿐 아니라 각자의 욕망과 의지를 가진 수많은 아이들이 등장한다. 눈앞에 닥친 복잡한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 지혁,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는 소월, 스스로가 원한 적도 없는 이 과업을 짊어지는 바람에 가족들과 아웅다웅하는 평범한 삶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기동, 런웨이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 없다는 효준 등, 같은 우주선에서 태어나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각자의 꿈이 다르기에 이들은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서로를 설득하고, 자신을 대변하며, 때로는 갈등한다. ‘인류 이주’라는 무거운 사명을 짊어졌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 자신의 의지가 가장 먼저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미나리로 내려가는 것은 전부 회사와 우리 부모들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들의 꿈이 아니라요. 저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 삶을 살고 싶습니다.” _본문 중에서
고대했던 보미나리 착륙을 앞둔 아이들은 결국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물론 중간중간 진통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갈등과 해결의 과정을 보면 아이들은 끝내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답을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을 먼저 배운 아이들이지만, 그 속에서도 나름의 질서와 규칙을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이 빛났기 때문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조율함과 동시에 내 마음의 소리 역시 귀를 기울이는 것, 스스로의 앞길을 고심해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은 시대와 배경을 떠나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너는 스노볼 속에』는 스노볼처럼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우리 모두의 꿈을 응원하는 작품이다.

우리가 몸을 실은 우주선 세찬미르는 외계 행성 ‘보미나리’를 테라포밍 하기 위해 106년째 날아가는 중이었다.
“항로 조정을 요구합니다. 테라포밍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