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그날의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가 진리의 지식으로 성장하여 주님과 정상적인 교제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영적 생명의 양식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간으로 발행되며, 개인과 직장, 학교, 교회들에서 매일의 경건 시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
서문
여름호(6,7,8월)를 내면서
언젠가 “피터 럭크만” 목사는 “지금까지 사역을 해 오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이 무엇이었습니까?”라는 질문에 “히브리서 12:2”을 펼쳐 읽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한 적이 있다. “내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내 눈을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일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가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지체들과 교제하게 되는데,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은, 위의 것을 바라보라는 명령과 잘 어울립니다.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바라봐야 하는데, 내게는 항상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쉬운 일 같지만 사실 가장 어렵다. 왜 어려운지 아는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우리가 따르고 섬기는 예수님을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 』(히 11:27)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눈으로 본 적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예수님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히 12:2)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네 눈을 들어 예수님을 보라. 주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바라보아라.”라는 찬송 가사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성도다. “D.L. 무디”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현 생애는 물론, 죽음 이후의 생애에 있어서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본지 “여름호”가 독자들이 주님을 온전히 믿고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되길 기도한다.

6.1(일)나는 길이요『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요 14:6).“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있는 길”이다. “의의 길”로서, “깨끗하고 거룩한 길”이다. 왜냐하면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하나님이시고, 그분의 거룩한 피를 인류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흘리셨기 때문이다. 한편 이 “의의 길”에는 “진리와 생명”이 있는데, 『진리의 하나님』(사 65:16)이신 『생명의 하나님』(시 42:8)께서는 『의로운 자들을 위하여... 공의의 길들을 지키시며, 자기 성도들』이 걸어가는 『길을 보존』하신다(잠 2:7,8). 또한 이 “길”은 “옳은 길”이고, “진리의 길”이며, “참된 길”이고, “정직한 길”이며, “의로운 길”이다. “성경대로 믿고 살아가는 길”로서, “죄”와 “거짓 교리”로부터 온전히 분리하며 살아가는 “성별의 길”이고, 어떤 형태로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길”이다. 이 “길”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위로부터 내려온 “하늘의 길”이지, 인간들이 자기들의 생각에 따라 제멋대로 고안해 낸, 이 땅의 지혜에서 비롯된 “땅의 길”이 아니다. “하늘의 길”을 걷지 않고 “땅의 길”을 따르면, 결국 길을 찾지 못한 채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거나 계속 제자리만 맴돌게 된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고 옛 길, 그 선한 길이 어디 있는지 물어 그곳으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들을 위하여 쉼을 얻으리라』(렘 6:16). 이러한 “쉼”과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마 11:28)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쉼을 주실 수 있는 바로 그 “옛 길”이자, “선한 길”이기 때문이다.“성도들의 왕이여, 주의 길은 의롭고도 진실하나이다”(계 15:3).
7.13(일)성도의 아름다움『오, 거룩하심의 아름다움 가운데서 주를 경배하라. 온 땅아, 그의 앞에서 두려워하라』(시 96:9).일상 속에서 “아름답다”라는 말은 주로 외형적인 미(美)를 나타낼 때 쓰인다. 즉 산, 강, 바다, 하늘 등의 자연 풍경이나 사람이 창작한 인공적인 예술 작품, 맛깔나게 차려 놓은 솜씨 좋은 음식(미식, 美食) 등, 인간의 오감에 감동과 감탄을 일으키는 대상을 아우를 때 “아름답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아름답다”는 사람 내면의 따뜻함과 진심, 고결함과 같은 내적인 미를 표현할 때도 자주 쓰이는데, 그 어원을 보면 어근 “아름”에 접미사 “답다”가 붙은 순수 우리말이다. “아름”이라는 어근은 현대에 와선 그다지 독립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데, 옛 문헌들에서는 “아름”이 “나” 혹은 “자기 자신”을 뜻하는 표현처럼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아름답다”라는 말은 “나(我)답다”로 해석될 수 있다. 성경의 시각으로 본 “아름다움”은 “거룩함”이다. 『예물을 가지고 그분 앞에 나아가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하라』(대상 16:29).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주께 돌리고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주께 경배할지어다』(시 29:2). 주님께서는 거룩함의 아름다움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는 분이시다. 그런 주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소유케 된 “거룩함”(고전 1:30)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살전 4:3) 거룩한 삶을 산다면, 그것이 그 성도의 진정한 “나다움,” 곧 “아름다움”이다.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따로 떼어놓은 삶을 사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다운” 성도를 사랑하신다.“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거룩하다.”일년일독 ● 살전 4,5장 ● 벧후 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