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대상이 한 장의 그림 속 여성이었다면, 그 감정은 어디로 흘러갈까. 《고독한 카라바조》는 예술의 이미지가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고, 그 흔들림이 어떻게 문장으로 되살아나는지를 보여주는 독특한 형식의 산문이다. 프랑스의 작가 야닉 에넬은 고등학생 시절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카라바조의 그림 속 여성의 모습에 강렬히 매혹된 뒤, 30여 년간 그 이미지와 함께 살아가며 한 편의 세계를 쌓아 올린다. 예술가의 전기나 회화에 관한 해설이 아닌 이 책은, 한 이미지에서 시작된 격렬한 욕망이 어떻게 글쓰기와 삶의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그리는 문학적 탐험이다. 그림과 문학, 육체의 감각과 글쓰기의 충동이 어우러지며, 한 인간이 예술과 마주하며 세상을 읽어내는 방식이 고독하고도 강렬하게 펼쳐진다.
출판사 리뷰
“예술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자전적 성찰과 예술 비평이 결합된 문학적 탐험
화가 카라바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미지未知의 것들과 마주하는 일이다. 이 예술가와 작품들은 20세기 중반 미술사학자 로베르토 롱기가 재조명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거의 잊힌 인물이었다. 그렇게 역사 속 무덤에서 홀연히 등장한 카라바조는 전설로 둘러싸인 존재였다. 16세기 그의 시대에 이미 ‘괴짜’로 여겨졌고, 불꽃 같은 기질과 반항적인 성격으로 인해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쫓기다 불행하게 삶을 마감했지만, 카라바조는 열정적인 화가였다. 오늘날 남아 있는 그의 60여 점의 작품이 그 사실을 증명해준다.
소설가이자 《블루 베이컨》의 저자이기도 한 야닉 에넬은 이 책 《고독한 카라바조》에서 카라바조의 작품과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에넬은 자신의 삶을 뒤흔든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와 <마태오 성인의 소명>, <병든 바쿠스>, <세례 요한의 참수> 등을 비교할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림을 통해 인간 내면의 욕망과 고통, 아름다움과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다.
삶을 사로잡아버린 이미지, 그 욕망의 시작
군사고등학교라는 폐쇄적이고 규율적인 공간 속에서 십 대 소년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한 장의 그림을 만난다. 검은 벨벳 커튼을 배경으로 서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클로즈업된 이미지다. 그 순간부터 그 여성의 얼굴, 귀에 걸린 진주와 나비 리본, 어깨선과 눈빛은 단지 회화로 남지 않는다. 그 이미지는 삶을 갈라놓는 칼날처럼 작용하며, 그 소년의 눈과 손, 정신과 욕망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그림 속 여성을 향한 집착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의 변화를, 그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통과의례로 기능한다. 언어보다 앞선 감각, 개념보다 앞선 이미지를 내세우며,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첫 이미지’의 위력을 되살려낸다. 삶이 갑자기 명확해지는 그 순간,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으로 에넬은 독자를 천천히 끌어들인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그림의 미학이 아니라, 그림이 인간의 내면에 어떻게 흔적을 남기는가이다. 유디트의 귀걸이에 달린 검은 나비와 진주는 단지 장식이 아닌, 욕망의 상징이자 삶의 비의秘儀로 작용하며 독자에게도 강렬한 몰입을 요구한다.
그림이 내 삶을 다시 쓰게 했다는 고백
《고독한 카라바조》는 카라바조에 대한 전기나 해설서가 아니다. 이 책이 집중하는 것은 한 장의 이미지, 한 점의 회화가 한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 감각이 어떻게 삶 전체를 다시 쓰게 만드는가에 대한 서사다. 그 여정은 15년 후, 로마의 미술관에서 마침내 그 그림과 재회하는 순간 절정에 달한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라는 작품의 충격적 진실 앞에 마주한 에넬은 진정한 계시를 경험한다. 한때 사랑이라 믿었던 형상이 그 작품 속 ‘유디트’였고, 그제야 전체 구도가 드러난 그림 속에서 그녀는 남자의 목을 베고 있었다. 강렬한 아름다움이 폭력과 뒤섞인 그 장면 앞에서, 에넬은 처음으로 자신이 사랑한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그 욕망이 얼마나 잔혹하고 모순적이었는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의 맹목적인 투사였는지를. 그러나 이 발견은 절망이나 배신으로 끝나지 않고, 그 순간부터 에넬은 그 강렬한 자각을 글로 옮기기 시작한다.
작가는 점점 더 이미지의 세부로 침잠해 들어가며, 단지 미술 감상의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이 그림에 반영하고 재구성한다. 그리고 결국 말한다. ‘그림은 내가 보았던 것이 아니라, 나를 본 것이다.’ 문장은 이 체험의 매끄러운 재현이 아니라, 그 그림 속 폭력과 침묵, 빛과 고독을 언어로 복원하려는 격렬한 시도이다. 《고독한 카라바조》는 한 명의 작가가 예술을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기록이다.
문학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일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예술과 문학이 어떻게 서로를 매개하며, 서로를 치환해 나가는지를 끈질기게 탐구하기 때문이다. 야닉 에넬은 카라바조의 그림을 통해 문학의 기원을 다시 질문한다. 그는 말한다. ‘한 여자를 생각한다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다.’ 단지 사랑의 대상을 노래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미지가 언어를 어떻게 불러내는지, 그리고 그 언어가 다시 현실의 윤곽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그려낸다. 이때 문학은 현실을 묘사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구성하는 감각의 형식이 된다.
카라바조의 빛, 그림 속 살의 떨림, 침묵 속에서 도약하는 손의 움직임—이 모든 것들은 언어로 번역되며 새로운 현실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예술이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생을 환기하는 감각의 전환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고독한 카라바조》는 그 예술적 체험의 내면화된 기록이다. 혼자 있는 시간, 무언가에 압도당했던 그 순간, 말할 수 없던 감정을 따라가며 생겨난 문장들이 이 책을 이루고 있다.
‘미술’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책은 카라바조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며,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림 속 얼굴이 당신을 오래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 그게 언젠가 당신의 삶에도 있었던 순간이라면, 이 책은 그 기억을 다시 꺼내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독한 카라바조》는 예술을 삶의 언어로 바꾸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바치는 고백이다.
나는 그림의 침묵이 내 말을 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침묵 속에 담긴 세계가 너무 친숙해져
서 그 뒤로는 내가 마치 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다시 말해 내면적으로 나 자신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은 인물들은 일상 언어에서는 사라진 미묘함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이 미묘한 목소리와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그림을 채우고 있는 불타는 수수께끼와 어울리는 단어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카라바조는 아마도 허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최초의 화가, 즉 그림이 단지 헛된 추구일 뿐이라는 이상의 환상 속으로 도피하지 않은 최초의 화가일 것이다.
허무에 우리 자신을 내어놓지 않고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의 경험에 접근할 수 있겠는가? 실패는 때로는 유익하다. 실패 속에서 수용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바울은 실패를 감수했을 때, 다시 말해 넘어졌을 때 시력을 되찾는다. 눈부심은 현실 속의 걸림돌과 불균형, 잘못을 암시한다. 우리는 프루스트처럼 넘어지고, 몽테뉴나 루소처럼 넘어진다. _
작가 소개
지은이 : 야닉 에넬
1967년 프랑스 렌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에서 보내고 프랑스로 돌아와 국립군사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1997년 창간한 <위험 경계선Ligne de risque>의 공동 편집장을 맡고 있고, 2010년부터 문학 및 영화 잡지 <탈주병Transfuge>과 발행이 재개된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의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림에 관심이 많아 《고독한 카라바조La Solitude Caravage》, 《블루 베이컨Bleu Bacon》 등을 출간했다. 그 외 지은 책으로 《원Cercle》(2007년 데셍브르상, 2008년 로저 니미에르상 수상), 《장 카르스키Jan Karski》(2009년 프낙 소설 대상, 엥테랄리에상 수상), 《창백한 여우들Les Renards pales》(2013), 《왕관을 꼭 쥐세요Tiens ferme ta couronne》(2017년 메디치상 수상) 등이 있다.
목차
01。 첫 번째 여성 011
02。 행동 취하기 015
03。 의식 018
04。 비밀스러운 삶 022
05。 에로틱한 운명 027
06。 그려진 형상들의 침묵 031
07。 참수 034
08。 유디트 039
09。 계시 043
10。 카라바조의 모든 것 049
11。 진주를 찾다 053
12。 사랑의 초원 058
13。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064
14。 그리스도의 팔 068
15。 이 소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073
16。 내면으로의 불타는 도약 078
17。 카라바조의 삶 082
18。 고독의 지점 088
19。 거세된 눈 094
20。 아버지의 죽음 099
21。 페스트 104
22。 기적의 샘 110
23。 그림을 배우다 119
24。 로마에 도착하다(1) 126
25。 로마에 도착하다(2) 134
26。 배 껍질을 벗기다 144
27。 여기 과일들이 있다 149
28。 전복과 난잡함 157
29。 엿먹어라 164
30。 바구니 170
31。 미스터리 180
32。 델 몬테의 집에서 191
33。 불의의 미스터리 197
34。 엉덩이와 발 208
35。 엉덩이와 무 217
36。 붉은 눈 223
37。 지혜는 오지 않을 것이다 229
38。 카라바조의 프란체스코 성인 235
39。 바글리오네와의 다툼 244
40。 세잔과 카라바조 253
41。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녀 258
42。 유디트와 다른 사람들 272
43。 검은 나비 278
44。 운명의 날 287
45。 범죄 이후 293
46。 사형 집행인들 301
47。 몰타 310
48。 탈출 318
49。 시칠리아! 323
50。 그리스도께 다가가다 330
51。 마지막 비밀 339
52。 돌아감 347
53。 카라바조의 이름 356
54。 진실에 따라 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