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의 일상은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터전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챗GPT에게 문서 요약을 맡기고, 비대면 미팅 플랫폼을 통해 소통하고, 소셜 미디어에 실시간으로 일상을 업로드한다. 현실과 디지털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으며, 이제는 기술로 매개된 경험이 인간의 직접 경험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된다고 여겼던 핵심적인 직접 경험들, 예컨대 대면 소통이나 손으로 쓰고 그리는 일, 무언가를 기다리는 순간과 공공성을 감각하는 일 등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문화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인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에서 경험이 소멸하는 21세기적 현상을 탐구하고 그 소멸이 갖는 의미를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대중문화, 과학, 정치, 법률 등 수많은 사례를 탐사하는 로젠의 작업은 인간의 조건이 되었던 경험들이 사라져가는 지금, 우리에게 이 흐름을 전복할 지적 근거를 제공한다. 출간 이후 아마존 사회과학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차지한 이 책은 〈가디언〉, 〈에스콰이어〉를 비롯한 유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디지털화, 매개, 초연결, 감시, 알고리즘에 의한 통제가 점점 심각해지는 세상에서 어떤 인간이 만들어질까? 인간의 조건이 아닌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까?인간은 몸을 갖고 있고, 자신의 취약성을 인식하며, 매개된 경험과 매개되지 않은 경험 사이를 자주 오가고, 성찰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며, 결국 유한하다. 반면 사용자 경험은 실체가 없는 디지털이고, 추적 가능하며,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고, 항상 매개자가 있다.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무한을 약속한다(몇몇 신기술이 장담하듯이 죽음 이후에도 남은 디지털 데이터를 모아 챗봇을 설계함으로써 비통해하는 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
이제는 많은 아이가 자연, 놀이, 음악, 언어에 대한 첫 경험이 스크린 등 기술을 통해 매개되는 세상에서 자라고 있다. 그들의 장난감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반응을 기록한다. 베이비 모니터는 그들을 지켜본다. 기기는 그들을 추적하고 모니터링한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온라인 아이디와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만든다. 그들은 디지털 이미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 속에서, 온라인 세계를 지배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공유를 거의 의무화한 곳에서, 경쟁과 지속적인 표현이 일반적이고 대면 상호작용의 가능성은 낮으며 익명의 괴롭힘이 쉬운 곳에서 성장할 것이다. 그곳은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세계다. 과거는 더 이상 멀고 단절된 무언가가 아니다. 페이스북이 “1년 전 오늘” 기능으로 상기시켜주는 것이다.기술 회사들이 자주 상기시켜주듯이 그곳은 가능성의 세계이고, 애플 광고 슬로건이 약속하듯이 “자동적이고 수월하며 매끄러운” 곳이다.이곳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여기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인가?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말했다. “관심은 가장 희귀하고 순수한 형태의 관대함이다.” 물리적으로 구현된 존재로서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즉 같은 공기를 마시고, 말로 하지 않은 서로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하는 것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려면 그의 물리적 존재에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이런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크리스틴 로젠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 학위를, 에모리대학교에서 미국 지성사를 전공해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선임연구원으로서 미국의 역사와 문화, 기술과 문화의 상호작용 등에 관해 연구해왔다. 버지니아대학교 고등문화연구소의 연구원이자 과학저널 〈뉴 아틀란티스〉의 자문을 맡고 있는 선임 편집자다. 〈코멘터리〉의 칼럼니스트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이기도 하다. 기술의 사회적·문화적 영향력, 생명 윤리, 역사를 주제로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 등에 글을 기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