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나이가 들어도 인생의 사소한 즐거움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오늘’을 사는 여성들 이야기마리나 사에스(Marina Saez)의 그래픽 노블 『오늘의 수영장(원제: Aiguagim)』은 바르셀로나의 한 수영장 탈의실에서 매일 만나는 여성들의 일상과 연대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작가는 30대에 접어들면서 삶의 소소한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아침 수영을 시작한다. 사람이 가장 적을 것 같은 시간대를 골랐지만 놀랍게도 거기에는 대부분 할머니들로 이루어진 아쿠아로빅 수업이 자리잡고 있다. 결국 사랑스럽고 유쾌한 할머니들과 친구가 된 작가는 30년 넘게 수영장을 차지해 온 인생 선배들과의 교감을 아름다운 그래픽 노블로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다양한 세대와 배경을 가진 여성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생생하게 포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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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탈의실’이라는 사적인 공간의 힘 이 작품은 수영장에 날마다 모이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가정이나 직장, 학교 같은 익숙한 사회적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여느 이야기들과 달리, 책은 ‘수영장 탈의실’이라는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상징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다.
탈의실은 겉치장 없이 본연의 자신을 마주하는 곳인 동시에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진 채 타인과 알몸으로 마주 서는 원초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적 특성은 여성들에게서 솔직하고 꾸밈없는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연대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
탈의실은 나이 든 여성과 젊은 여성, 어머니와 딸, 아내 혹은 비혼 여성, 억압받는 여성과 해방된 여성 등 모든 여성들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특별한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이곳은 단순한 탈의실을 넘어 여성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를 지지하며 연대하는 해방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를 떠나 저마다의 자리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여성들의 통쾌하고 아찔한 입담과 거침없는 목소리를 담았다.
‘엄마 세대’의 삶과 노년의 가치 이 책은 오랜 세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 왔지만 사회적으로 그 존재나 경험이 쉽게 간과되는 노년 여성들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들의 지혜, 아픔, 그리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삶의 문제들을 솔직하게 보여 준다. 이미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듯 보이지만, 그 어떤 목소리보다 강렬한 삶의 지혜와 경험을 지닌 ‘그녀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고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한때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였다가 할머니가 된 여성들. 80세가 넘어서도 가사 노동에 시달리고, 손주들을 다 키우고 나서야 육아에서 해방되기도 하지만, 먼저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면서도 혼자가 된 여생을 즐기고, 자신의 삶에 관여하려는 자식들에게 이런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남편이 죽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들이 와서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네.”
이는 멀리 스페인이라는 이국의 땅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국적 불문 우리네 ‘엄마 세대’의 이야기가 아닐까. 책은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연대와 지지를 통해, 나이듦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할머니들이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 기반한 ‘살아 있는 서사’이 책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주인공으로 활약한 할머니들의 실제 사진이 수록되어 있고, 에필로그는 작가가 할머니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등장인물의 대화나 상황 묘사가 실제 인물들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더욱 진정성 있고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작가가 직접 발로 뛰며 기록한, 꾸며내지 않은 여성들의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는 단순한 픽션이 아닌, 우리 시대 여성들의 ‘살아 있는 기록’으로서 매우 가치 있는 작품이다.
주름진 몸을 유쾌하게 그려낸 따뜻한 시선작가는 바르셀로나의 강렬한 햇살을 연상시키는 선명한 색감과 개개인의 캐릭터를 잘 살리는 개성적인 그림으로 매 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자유롭고 감각적인 색이 넘쳐흐르는 아크릴화는 할머니들처럼 유쾌하고 발랄하기 그지없다.
또한 이상적인 이미지가 아닌 실제 여성의 몸을 사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다. 주름지고 뚱뚱하며 제모도 하지 않은 여성들이 모여 주고받는 ‘만담’과도 같은 이야기를 엿보고 있자면 슬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삶은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주인공들처럼, 시종일관 다채롭고 즐거운 분위기를 선사하는 이 책의 매력에 빠져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