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긴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아. 이제 네 차례야.”
세상 끝에서 깨어난 다섯 아이들의 이야기
전태일문학상·청강문학상 수상작가 김옥숙 첫 성장소설
지금 우리 곁의 누군가는 살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장편소설 《천사가 죽던 날》은 삶을 등지고 저승에 간 수호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을 만나 서로 풀어놓는 이야기를 담았다. ‘청소년 자살’과 ‘죽음’ 그리고 ‘청소년 문제’에 관해 비껴가지 않고 마주하는 용감한 소설이다.
세상 모두에게 하나씩 주어지는 건 생명 아닐까. 주인공 수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최선의 선택과 어쩔 수 없다는 마음뿐이었을 거다. 그렇기에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고 저승사자를 보았을 때 자신의 죽은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머리에 붉은 뱀 두 마리가 붙어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수호는 끔찍한 뱀을 떼려면 자신처럼 스스로 죽음을 택한 아이들의 사연을 들어 줘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천사가 죽던 날》은 다섯 청소년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어두운 현실, 암울한 단어를 통과한다. 소설은 ‘완벽한 아이와 성적’ ‘학교폭력과 왕따’ ‘가정폭력’ ‘자아정체성과 퀴어’ ‘그루밍’ 같은 주제를 담고 있다. 작가는 청소년들이 갖는 고민과 현실의 날것을 드러내 보이기보다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한다. 바로 지금 경청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이제 이 ‘일’은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면한 과제라고.
김옥숙 작가는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전태일문학상과 천강문학상 대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 왔다. 오랜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청소년 자살’이라는 소재에 세심하게 접근한 이번 소설은 날카로우면서도 따사로운 서사로 독자를 사로잡는 것은 물론이고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작품이다.
괴물이 된 아이들도 한때는 천사라 불렸다!
십 대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용감한 소설
여기, 현실의 문제를 세밀하게 파고드는 소설이 있다. 《천사가 죽던 날》은 세상을 등진 주인공 수호가 저승에서 깨어나 지난날을 되짚는다. 장소는 저승이라는 현실 너머이지만 수호는 유쾌한 행동과 재치 있는 아이임이 틀림없다. 죽었다고 슬퍼하기는커녕 저승사자와 농담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막상 ‘죽음’이란 단어와 맞닥뜨리자 망설이고 만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수호만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정수호! 너 왜 죽음을 선택했지?”
최녹사는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죽고 싶어서죠.”
바보 같은 질문엔 바보 같은 답을 해야 마땅했다.
“왜 죽고 싶었지?”
“살기 싫어서죠.”
당연한 대답이었다.
“왜 살기 싫었을까?”
왜 살기 싫었냐고? 나는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최녹사를 똑바로 응시했다. 무슨 스무고개도 아니고 왜 곤란하게 자꾸 묻고 난리야?
“난 죽어 마땅한 놈이었어요. 살 이유도, 살 가치도 없었어요. 나 같은 건…….”
최녹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잠시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_p.26
수호는 저승사자 최녹사의 질문을 뭉개며 대답을 피한다.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이제 와서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작가는 수호라는 인물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야 드러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수호뿐 아니라 같은 선택을 한 아이 4명이 더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 사망 원인 1위가 뭔 줄 아니?”
자다가 뭔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입만 열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헛소리나 지껄이는 최녹사가 얄미웠다.
“그게 이 뱀 대가리랑 뭔 상관이에요?”
“바로 자살이야. 청소년 다섯 중 한 명은 자살 생각에 빠지고 사흘에 한 명꼴로 자살하지. 출산율은 꼴찌인데 청소년 자살률은 세계 1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자살 공화국’인 셈이야.”
최녹사는 무슨 박사처럼 썰을 풀었다. 청소년 자살 대책회의에 다녀온다고 하더니 그 말이 헛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_p.25
소설은 청소년들이 겪는 여러 어두운 현실, 암울한 단어를 통과하며 현실을 직시하고 작품의 메시지로 엮어 간다. ‘완벽한 아이와 성적’ ‘학교폭력과 왕따’ ‘가정폭력’ ‘자아정체성과 퀴어’ ‘그루밍’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 중심에 수호를 배치해 우리에게 이 ‘일’은 회피가 아닌 바로 봐야 할 과제라고 느끼도록 한다.
“고마워, 내 얘기 끝까지 들어 줘서.”
서로에게 귀 열고 다가가는 세상이 되길
수호는 머리에 달려 있는 붉은 뱀 두 마리를 알아채고 소스라친다.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뱀이었으니 놀랄 수밖에. 최녹사는 수호처럼 자살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수호의 이야기도 숨김없이 털어놓으라는 것이다. 하필 수호는 ‘듣기’를 제일 못하는 아이였다. 소설은 여기서 ‘경청’에 주목한다.
“단지 만나기만 해선 안 되지. 내가 도진보 노인 이야기를 왜 했겠니? 그처럼 자살자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 주어야 해. 그리고 마지막 날엔 그 애들 앞에서 네 이야기도 숨김없이 다 털어놓아야만 뱀이 떨어진단다.”
낯선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한다고? 오 마이 갓!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구요? 내가 왜요? 왜 모르는 애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해요? 그리고 제가 제일 못하는 게 듣기라니까요.”
_p.33
그저 남의 말을 들어 주는 정도는 쉬울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마음을 기울여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본 기억이 언제였던가. 수호를 포함하여 다섯 명의 아이는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속에만 묻어 두었던 말들. 아이들은 용기를 내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과연 수호는 남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할 수 있을까? 수호는 첫 번째 친구 현성이를 시작으로 아이들을 찾아다닌다. 그들은 ‘혼자’ 멀거니 있다. 저승에 왔어도 ‘남겨진’ 거다.
뱀을 떼기 위해 건넨 물음은 어느새 응답과 소통으로 번진다. 아이들은 이걸 바랐을 거다.
『천사가 죽던 날』은 죽음을 재조명하며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할 이야기를 풀었다. 어쩌면 나의 듣기 혹은 포옹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잠시만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면 어떨까. 그리고 유일한 ‘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유일’에게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정수호!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수건처럼 널브러져 있다가 눈을 떴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뭔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다 선생님에게 갑자기 이름이 불린 상황이랄까. 검은 셔츠, 검은 정장에 검은 중절모까지 쓴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어? 누, 누구세요?”
“정수호! 저승에 온 걸 환영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뱀을 떼는 게 소원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었다. 한껏 뜸을 들이는 최녹사가 얄밉긴 했지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머리에 붙은 뱀 대가리를 떼 낼 수만 있다면 최녹사가 무슨 짓을 시켜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장님 제발! 제발! 저 숨넘어가는 것 안 보이세요.”
“허허! 죽은 녀석이 숨이 넘어간다니. 농담도 정도껏 해라.”
“제발! 뭔데요?”
“말을 잘 들어 줘야 해.”
(중략)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남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일이다. 나는 집중력이 제로다. 늘 딴생각에 빠져 있곤 했다. 아마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그러지 않았을까? 수업시간 에 집중하는 것도 힘들었고, 가족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