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쉬는시간 청소년 시선 여섯 번째 작품으로 김남극 시인의 『스무 살이 되기 전에』가 출간되었다. 일찍이 시집 『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 『너무 멀리 왔다』, 『이별은 그늘처럼』 등을 통해 진심 어린 언어와 삶의 구석을 비추는 따뜻한 시선을 선보여 왔던 김남극 시인의 첫 청소년 시집으로, 오랜 기간 교사로 재직하며 청소년들과 함께 지낸 날들의 온기와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봉평이라는 작고 먼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들, 그리고 두메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시선과 감각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와이파이 되고요 / 인스타에 사진도 올려요”라며 선입견을 유쾌하게 비트는 시편부터, “스무 살이 되기 전에 할머니가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삶의 무게까지, 이 시집은 단순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청소년의 시선과 목소리에 중심을 둔다.
출판사 리뷰
쉬는시간 청소년 시선 6
김남극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출간
숨기고 싶지는 않지만
숨기고 싶은
내가 이 나라 사람인데
가끔 아닌 듯한
이 순간이 그런 순간
“피부색이 다르면 사람 마음도 다를까요”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을 다룬 김남극 시인의 청소년 시집
쉬는시간 청소년 시선 여섯 번째 작품으로 김남극 시인의 『스무 살이 되기 전에』가 출간되었다. 일찍이 시집 『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 『너무 멀리 왔다』, 『이별은 그늘처럼』 등을 통해 진심 어린 언어와 삶의 구석을 비추는 따뜻한 시선을 선보여 왔던 김남극 시인의 첫 청소년 시집으로, 오랜 기간 교사로 재직하며 청소년들과 함께 지낸 날들의 온기와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봉평이라는 작고 먼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들, 그리고 두메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시선과 감각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와이파이 되고요 / 인스타에 사진도 올려요”라며 선입견을 유쾌하게 비트는 시편부터, “스무 살이 되기 전에 할머니가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삶의 무게까지, 이 시집은 단순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청소년의 시선과 목소리에 중심을 둔다.
이번 시집에서 김남극 시인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차별, 강원도 봉평이라는 벽지의 공간이 주는 문화적 차이와 정서적 거리, 그리고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소소한 웃음과 다정한 순간들을 포착한다. 그러나 이 주제는 결코 계몽적이지 않고 설명적이지도 않다. 시인은 스스로를 감추고 화자인 아이들의 목소리를 오롯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베트남 북부의 산속에서 와서 지금은 계절 노동자들의 작업반장이며 통역사로 일하는 엄마의 이야기. 셰프였지만 사고 이후 거동이 불편해진 아빠를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을 잠시 미뤄 두고 “간호과에 갈 거예요” 다짐하는 모습. 이 모든 삶의 장면들이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처럼 담담하게 그려진다. “다문화 가정이냐”(「다 문화가정이잖아요」)는 선생님의 질문에 “누구나 다 문화를 가진 가정에서 자랐다”고 응수하는 화자의 모습에서는 차별을 고발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의 고정된 시선을 유쾌하게 비틀고 자신만의 세상을 받아들이는 당당함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이 한 권의 시집 전체에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등장시키고 이들을 시적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학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는 안도현 시인의 추천사처럼, 다문화 가정 출신 청소년, 농촌 노동자의 자녀, 조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겪는 현실을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그 안에서 길어 올린 작은 연대와 희망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청소년 문학의 지평을 한층 더 넓히는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철쭉과 진달래와 목련과 산수유가 피어나는 학교 풍경, 첫차와 막차를 타는 등굣길과 하굣길, 늦은 밤 배추밭에 내린 서리, 이장님과 반장님을 마주치는 장날, 가마우지 떼가 나타나는 개울, 앞산으로 내달리는 고라니의 울음소리 등은 모두 구체적인 시적 풍경이 된다. 「나는 자연인」 같은 시에서는 풀꽃과 인간의 욕망을 조용히 대비시키며, 인간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는 동안 식물은 “비와 구름 속에서 함께 살다 겨울이면 사라지는” 존재라는 점을 짚는다. 이처럼 자연을 바라보는 투명한 시선과 청소년들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시편들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응을 선사한다.
도회지 사람들의 ‘시골에 대한 편견’도 유쾌하게 뒤집는다. 서울 친구가 “감자 옥수수 많이 먹겠다”(「감자, 옥수수, 지하철, 인터넷」)며 신기해하자 화자는 “피자도 치킨도 먹어요 /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도 / 급식에 나오거든요.”라며 응수한다. 서울과 지방, 도시와 농촌의 간극은 실제 거리보다 인식의 거리에서 더 멀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시의 말미에서 “수렵 채취 생활을 하는 줄 안다”는 유머러스한 표현은 시골 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비틀고, 동시에 그 안에 내재한 차별적 시선을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계절제 농업 노동자도 다 인권을 존중받는 사람이라는데 /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가 불 속에서 타 죽어야 하는지”(「당연한 것들에 대한 질문」)같은 문장은 청소년 화자의 언어로 던지는 진지한 사회적 질문이다. 일상 속에서 체화된 감정과 현실에 대한 물음이 무겁지 않게, 그러나 단단하게 다가온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놓치고 지나온 것들에 대한 조용한 되짚음이기도 하다. 감자꽃이 피고 무꽃이 지는 시간 속에서 시집 속 아이들은 묵묵히 오늘을 살아낸다. 그 조용한 생의 무늬가 시가 되어, 이 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진로 캠프에서 만난 서울 친구는
내가 강원도 산골 산다는 말을 듣고
감자 옥수수 많이 먹겠다
웰빙이네, 건강하겠다 하고
신기한 듯 나를 본다
피자도 치킨도 먹어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도
급식에 나오거든요
감자 먹은 지 오래됐고요
옥수수는 미백만 먹어요
지하철 없으면 어떻게 다녀
인터넷 쇼핑은, 인스타는
우리 동네도 도시의 마을버스처럼
시내버스 다녀요
와이파이 되고요
인스타에 사진도 올려요
수능특강도 인터넷으로 사요
아직도 서울 사람들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
감자 옥수수만 먹으며 연명하고
피자나 치킨은 명절 때나 먹을 수 있고
물물교환으로 닭고기나 삼겹살을 구하는 줄 안다
수렵 채취 생활을 하는 줄 안다
한 시간 이내 거리는
걷다가 쉬다가 걷다가 하면서
19세기 백성들처럼 사는 줄 안다
자식이 보낸 1등급 한우도 함께 굽고
칠순 기념 효도 여행 해외로 가면서
독거노인 친구 선물도 챙기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마을회관에서 스마트폰 활용법도 배우는
우리 마을은 그렇지 않다
―「감자, 옥수수, 지하철, 인터넷」 전문
아빠는 솜씨 좋은 셰프였어요
손만 대면 최고의 간짜장과 해물짬뽕이 탄생하고
바삭바삭하고 촉촉한 찹쌀 탕수육을
달콤한 소스와 함께
비밀의 문을 열 듯이
신비한 맛의 세계를 열던
가겟세를 올려달라는 집주인 이야기에 속상했던 아빠는
음주운전으로 집에 돌아오다 사고가 났어요
죽음을 피한 아빠가 보조기에 기대 겨우 마당을 산책하기 시작한 건
오 년 전쯤
엄마는 농협 마트 계산원으로 막국수 집 주방으로
저녁엔 신음 소리와 함께 잠자고
아침엔 파스 냄새와 함께 출근하는데
난 국문과나 문화인류학과를 가고 싶어요
근사한 시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아름다운 말들에서
시베리아나 남미의 벌판과 밀림을 보거나
그곳에 오래 산 사람들의 페인팅이나 장신구들을 보면서
인간의 기원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죠
그것이 안 된다면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죠
내가 사는 이런 시골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시작되었어요
난 간호과를 갈 거예요
빨리 돈 벌어서
아빠 보조기를 새 걸로 바꿔드리고
엄마 몸에서 나는 파스 냄새와 이별하려고요
간호사가 된 후 국문학자나 인류학자처럼
좀 고급스럽게 사는 방법은
나중에 찾아보려고요
그러려구요
―「난 간호과를 갈 거예요」 전문
담임 샘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다문화 가정이냐고 물었다
난 누구나 다 문화가정 자녀라고 생각한다
다 문화를 가진 가정에서 자랐으니까
이제는 외할아버지 얼굴도 잊은 것처럼
엄마는
저녁 마당가에서 울지 않는다
마을 부녀회 총무를 맡은 날
엄마는 내가 국어를 90점 맞았을 때보다
더 기쁘게 울었다
난 우리 집이 다문화 가정이 아니라고 말하고
교실로 돌아와 단톡방에 들어갔다
‘쌀국수 먹으러 갈 사람
쟈린 아줌마네 식당으로’
―「다 문화가정이잖아요」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남극
강원도 봉평 출생. 2003년 《유심》 신인문학상 수상. 시집 《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 《너무 멀리 왔다》 《이별은 그늘처럼》.
목차
1부 숨기고 싶지는 않지만 숨기고 싶은
별
다 문화가정이잖아요
탈북자 철수
수학여행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달맞이꽃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이 없다는 엄마 고향
첫 장학금 받은 날
고속 기차
엄마를 위해 밥을 할 계획이다
문학 수업 시간
당연한 것들에 대한 질문
절벽 위 소나무같이
고전읽기 수업 시간에
내가 야자를 하는 이유
2부 피부색이 다르면 사람 마음도 다를까요
감자꽃
봄, 밤
감자 열매처럼
휴업일
등하교 길
단추
봉평 장날
혼자 가는 먼 집
눈 오는 날
반딧불이
감자, 옥수수, 지하철, 인터넷
피자가 오긴 와요
3부 바람과 햇빛과 달빛과 비와 구름 속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봄밤
개구리
나는 자연인
비 오는 날
7월
옥수수
노란 해당화 핀 집
모두의원
명자꽃
무꽃
감나무가 없는 우리 동네
은행나무
4부 이제 학교를 떠날 때
목련
빵꽃
첫사랑
야속하고 야속한 국어 샘
난 간호과를 갈 거예요
매미가 운다
고래
일탈하라고요, 나보고요?
법과정치 수업 시간에
고라니가 우는 이유
사요나라 일본어 샘
고3
졸업
시인의 산문
나와 다른 존재를 생각하는 시간
독서활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