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너무나 많은 부와 말할 수 없이 큰 불행
엄청난 불평등의 시대
경제학 게임이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괴짜 경제학자,
전 그리스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미래 세대에 건네는 진짜 경제 이야기
되풀이되는 광기, 패닉, 붕괴자연의 세계에서 누, 버팔로, 물소, 양떼 등 초식동물 무리가 집단자살을 감행하는 사례가 종종 보고된다. 자살이라기보다, 무리가 달리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꺼번에 절벽 아래로 떨어져 떼죽음하는 것이다. 무리의 선두는 물과 풀을 찾아 앞으로만 내달리고 중간과 뒤처진 무리는 그들을 쫓아 맹목적으로 달린다. 무리 속에서 몇몇 개체가 길의 끝이 벼랑임을 감지하지만, 위기를 감지하고 경고하는 그들도 뒤에서부터 거침없이 밀려드는 속도에 속수무책 함께 떠밀려갈 뿐이다. 자연의 세계에서 초식동물의 이 집단 떼죽음은 종종 자본주의의 폭주로 은유되곤 한다.
2023년 3월 10일, 미국 내 자산 기준 16위 규모인 실리콘밸리은행이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이 발생한 지 이틀 만에 파산 사태를 맞았고 이 여파로 세계 금융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의 악몽을 떠올리며 크게 흔들렸다. 미국 정부는 고객이 맡긴 예금을 보험 보증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하고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자금 대출을 결정하는 등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하지만 시장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한 미국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위기는 다른 은행으로 번졌고, 은행의 방만한 경영과 정부의 관리 책임을 둘러싼 논란은 2008년 금융위기 상황과 꼭 닮아 있었다. “자본주의는 광기, 패닉, 붕괴의 연속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가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금융위기를 분석한 뒤 이들의 공통점을 찾아 내린 결론이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사회 구조를 지탱하는 교환 형태의 하나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합리적이거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통제력을 상실한 채 오직 앞만 보며 내달리며, 엄청난 불평등과 불황, 환경 오염을 비롯해 재난에 가까운 위기를 반복적으로 자초한다. 이 맹목적인 폭주를 멈춰 세우고 올바른 방향으로 길을 틀 방법은 과연 없을까?
애버리지니가 영국을 침략하지 않은 이유애버리지니는 4~5만 년 전부터 오스트레일리아에 살았던 원주민이다. 이들은 영국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침략해 식민 통치를 시작한 1900년대 초부터 몰살되다시피 하여 현재는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3퍼센트 정도만 남아 있다. 이 책의 저자로 그리스의 재무장관을 역임한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이 책의 서두에서 이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영국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쳐들어갔지만, 애버리지니는 영국에 쳐들어가지 못했을까?”
제국주의적인 침략이 횡행하던 시절에는 영국인이 원주민보다 유전자가 우수하기 때문이라는 식의 주장이 힘을 얻었고 이러한 시각에서 비롯한 인종적인 편견과 차별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바루파키스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농경 기술과 잉여생산물의 등장에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다. 수렵과 채집만으로 필요한 식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던 영국은 불가피하게 농사짓는 법을 터득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잉여생산물을 비축하기 위해 공동 저장 창고를 만들고 비축되는 곡식의 양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개발했다. 농경을 통한 잉여생산물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사유재산과 사회 계급이 발생하고, 계급 지배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 군대, 관료 등의 장치와 기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나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풍요로운 환경의 혜택으로 사냥과 낚시, 열매와 과일 채집만으로 풍족한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에 굳이 농업 문화를 발전시킬 필요가 없었다. 저장이 가능한 옥수수, 쌀, 보리 같은 곡식과는 달리 물고기, 토끼, 바나나 같은 것들은 시일이 지나면 썩어서 저장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잉여생산물을 만들어낼 이유도 없었다. 굳이 다른 민족을 침입하고 죽이면서까지 뭔가를 빼앗을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이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단을 강구하기보다는 다채로운 시와 음악, 신화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차이는 훗날 두 사회 공동체의 운명을 크게 바꿔 놓았다.
불평등한 세상의 일면을 들여다보다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영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역사적으로 농경사회에서 출발한 국가는 대부분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권력을 쥔 자들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 잉여생산물을 분배했고 그에 따른 부를 유지하고 늘리기 위해 다른 민족을 침략하며 불평등을 가속화했다. 한 사회 내에서도 계급 간의 격차가 심화되었는데, 이런 불평등이 만연하면 다수 대중은 큰 고통을 겪고 불만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크게 방해받지 않고, 때때로 발생하는 방해를 억누르며 계속해서 더 많은 잉여생산물을 가져감으로써 권력을 유지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바로 자신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부를 더 소유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정당화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그것을 대중에게 주입함으로써 권력 유지가 가능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이 지배 이데올로기는 종교적인 모습을 띠었는데, 성직자들이 종교와 신화 등의 장치를 통해 교묘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신분제와 불평등한 계급 사회를 옹호한 것처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주류 경제학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교환가치가 승리를 거둔 뒤 이 지배 이데올로기는 마치 과학처럼 보이는 경제 이론의 모습을 띤다. 현대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이 마치 능력에 따른 공정하고 정당한 분배인 것처럼 대중을 호도한다. 대부분의 경제학 도서들과 경제 이론서들, 신문의 경제면, 경제평론가들은 현대의 시장 경제가 너무나 복잡해서 일반인은 그에 대해 의견을 가지기 어렵다며 경제 문제는 차라리 은행가, 경제관료 같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와 금융 관료들은 2008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위기조차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
괴짜 경제학자가 들려주는 쉬운 경제 이야기 《딸에게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는 그리스의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시장사회의 탄생에서부터 금융, 부채, 국가, 불황, 생태 위기, 화폐 문제에 이르기까지 핵심 경제 이슈를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살펴보는 책이다. 잉여생산물의 생산과 관련해 바루파키스는 불평등의 뿌리가 인간의 초기 기술혁명, 즉 농경의 발전에서 기원하며 훗날 산업혁명으로 인해 국가 간, 사회 계급 간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지적한다. 과거 권력자들이 빈민과 농민,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부당하게 착취한 잉여생산물로 부를 축적했듯이 오늘날에는 은행가들이 있지도 않은 가치를 미래에서 훔쳐와 개인과 기업에 대출해주고 값비싼 이자를 통해 부를 쌓으며, 많은 부를 소유한 이들은 그 부를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으로 더 많은 부를 독점하면서 빈부격차는 더욱 극심해졌다는 것이다. 생산 현장에서는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고, 시장이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시장의 노예가 되며,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파괴적 경제 공황으로 어마어마한 비효율과 낭비가 발생한다. 저자는 엄청난 불평등과 재난에 가까운 위기를 만들어내는 이런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냉정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불편한 진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괴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 책의 저자인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스스로를 ‘괴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라 부른다. 1961년 아테네에서 태어나 영국 버밍엄 대학교와 에섹스 대학교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바루파키스는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가 그리스로 돌아와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일원으로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 내각에서 그리스 의회 의원을 지냈다. 2015년 당시 그리스는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트로이카로 불리던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상황이었다. 이들 트로이카는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그리스 정부에 강력한 긴축재정을 요구했고 결국 그리스 정부는 국민투표를 거쳐 구제금융을 시행하기로 결정하면서 그리스의 운명은 트로이카의 손에 넘어갔다.
2015년 1월부터 6개월 가까이 재무장관을 역임하며 그리스의 부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바루파키스는 트로이카의 긴축재정 요구에 반대하며 ‘그들로부터 돈을 얻는다면 그리스의 자주적 경제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도 익히 처절하게 경험한 바대로 IMF는 위기에 처한 나라에 돈을 빌려주고 그 나라의 공공영역을 박살내 빚을 받아내는 것으로 악명 높다. 긴축재정을 받아들이기로 한 국민투표 결과 직후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허름한 티셔츠를 걸친 채 단상 앞에 나타나 재무장관을 사임한다고 밝힌다. 그리스 경제의 구원투수로 기대를 모으며 재무부 장관을 맡았지만 그를 극도로 혐오한 트로이카의 공세 탓에 재임기간을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것이다. 이후 그는 시리자를 탈퇴한 뒤 자신의 지지자들을 모아 긴축 반대와 경제정의를 기치로 내걸고 친유럽주의 그리스 좌파 정당인 유럽현실불복종전선을 창당하여 한때 원내 진입에 성공하기도 했다. 또한 국제풀뿌리 운동인 DiEM25(Democracy in Europe Movement 2025)를 공동 설립하여 유럽의 민주주의 부흥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전 세계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이 책에는 경제학 게임이론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좌파 정치인, 행정 관료로서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지혜가 풍부하게 녹아 있다. 바루파키스는 벼랑 끝인 줄 모르고 폭주하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불편한 이면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속도와 방향을 통제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함께 제시한다. 바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 시스템의 적극적인 통제 아래 놓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평등의 권리가 있다. 이것이 천부 인권 사상이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천부인권 사상을 원칙으로 하며, 모든 시민에게 한 표씩 동등하게 부여하는 보통선거 제도로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주주총회장에서 투표권은 한 주당 한 표의 권리가 주어진다. 즉, 자본주의는 더 많은 부를 소유한 자들이 권한을 더 많이 갖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문제는 자본가들이 이런 권한을 정치적, 법적 영역에서도 부당하게 행사하려 한다는 점에 있다. 서구 사회에서 보편화된 자본의 로비, 한국 사회에서 재벌의 영향력 등 이미 자본의 힘은 민주주의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바루파키스는 경제 영역에도 과감히 민주주의를 도입해 자본가들의 탐욕을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민주주의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환경 보호와 인간의 노동 등 많은 부분에서 인류에게 남겨진 유일한 희망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딸에게 전하는 편지 형식을 빌려 미래 세대를 향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에 대해 친절하고 쉽게 설명하는 이 책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격화되어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사회적으로 불안과 갈등이 심화되는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책을 통해 미래 세대, 특히 청소년들이 불평등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인식하고, 우리 사회가 좀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지적 모색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해결의 열쇠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도처에 흩어져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이 절망적으로 손을 모아 꿈을 꾸며, 뼈 빠지게 일을 하는 모든 구석진 곳에.

이제 유라시아를 보자. 북에서 남으로 뻗어 있는 아프리카와는 달리 유럽은 대서양에서 시작해 태평양에 접해 있는 중국과 베트남 해
안까지 동쪽으로 뻗어 있어. 즉, 유라시아는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키는 작고 허리는 굵어. 이게 무슨 뜻일까? 사람들이 유라시아를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횡단하는 동안 비교적 적은 기후 변화만을 경험한다는 뜻이야.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가는 동안 다양한 기후대의 지역을 만나게 되지.
생명이 위험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기증자로부터 무료로 피를 제공받는 나라가 세상에는 아주 많아. 어떤 나라에서는 혈액 기증자가 피를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받기도 하지. 그런데 어떤 나라가 혈액 기증자가 더 많을까? 자신의 소중한 피를 제공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나라일까, 아니면 무료로 기증하는 나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