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어휘가 문해력이다사유의 폭을 넓히고 국어 감각을 길러주는 우리말 어휘 수업우리는 누구나 한때 세상의 모든 단어가 궁금하고 알고 싶던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였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걷다가 간판에 적힌 글씨를 읽으며 “이건 무슨 뜻이야?”, “저건 어떻게 읽는 거야?”라고 ‘폭풍 질문’으로 엄마 아빠를 곤란하게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은 어떤가? 아는 말, 쓰던 말만 쓰고, 새롭거나 생소한 단어를 접하면 이상한 말이라며 무시하거나 짜증부터 내는 등 거부감이 먼저 든다.
그러나 늘 쓰는 어휘만 구사하면 생각의 폭은 좁아지고, 창의적 사고력도 후퇴한다. 어휘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쓰이는 단어들의 집합이자 학습의 가장 근본적인 단위로 사회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은 단어를 중심으로 언어를 학습하고, 이 개별적인 단어를 연결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펼치기 때문이다. 언어는 인간의 사유를 이끌어 가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타인과의 소통도, 자신만의 생각도 언어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즉 어휘란 사유의 깊이와 다양성을 결정하는 도구다. 따라서 어휘력이 높은 사람은 그만큼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고, 세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도 갖추게 된다.
따라서 어휘를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문해력과 독해력은 물론, 창의적 사고력과 표현력까지 단번에 높아진다. 단어 하나를 단서로 글 전체에 담긴 주제를 곧바로 파악해 내고, 단 한 단어만으로 분명한 태도를 담아내는 연습을 하면서 자신의 교양이 자라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생각하는 힘은 탄탄한 어휘력에서부터 자라난다.
어휘를 공부하면 글이 저절로 이해된다!국어 표현력과 독해력이 한 차원 높아지는 우리말 지식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 스크롤을 내리며 키워드만 보는 식의 읽기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우리나라 학생들의 ‘읽기’ 기초학력 미달률은 13년 새 3배 증가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문자’라고 불리는 한글을 쓰는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했던 우리나라이지만, 단순히 언어를 알고 구사하는 것에서 나아가 문해력과 독해력을 측정하는 검사에서는 그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한때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심심한 사과라니?”,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라고 비난한 일이 화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 쓰인 ‘심심하다’가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라는 뜻이라는 것을 안다면, 많은 단어 중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선택한 화자의 진심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 그만큼 ‘깊고 간절한’ 표현이므로 일반적인 대화 상황보다는 공식적이고 진지한 상황에서 쓴다는 것까지 이해한다면 국어 표현력과 독해력을 한층 키울 수 있다.
최근에는 외국어 표현을 가공 없이 그대로 쓰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말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비슷한 뜻의 여러 단어가 있더라도 각각 사용되는 맥락과 분위기는 분명히 다르다. 단어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순간, 어렵고 복잡한 글도 저절로 이해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까지 한 차원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의어·반의어·동음이의어·문법적 특성과 활용 맥락까지모든 학습의 단단한 기반이 되는 어휘력을 높인다!단순히 어휘를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휘를 어떻게 공부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마치 영어 단어를 외우듯이 어휘를 머리에 욱여넣다 보면 흥미도 금세 떨어지고,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일상의 의미와 맥락을 익히지 못하므로 반쪽짜리 공부가 되기 십상이다. 어휘는 반드시 ‘글과 함께’ 익혀야 한다. 그래야만 어휘를 둘러싼 문장, 문법, 맥락, 분위기를 고려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어휘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말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들 말한다. 어휘의 수가 많기도 하지만, 띄어쓰기, 맞춤법, 외래어표기법 등 유독 난해하고 규칙이 통용되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기보다는 흥미롭거나 유익한 글을 읽으며 관련된 어휘와 개념이 나올 때마다 그때그때 기억해 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효율적인 공부법이 된다.
이 책은 단순히 주제에 해당하는 어휘뿐만 아니라 그 어휘의 동음이의어, 유의어, 반의어는 물론 문법적 특징과 주로 쓰이는 맥락까지 국어를 향한 여러분의 호기심이 한껏 넓어지도록 구성했다. 동시에 한 줄 요약, 읽을거리, 친절한 주석 등으로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자연스럽게 국어 공부를 할 수 있게끔 노력했다. 쉽고 흥미롭게 우리말 어휘의 다양한 매력에 흠뻑 빠져보길 바란다.

이제 맨 처음에 나왔던 ‘준수(俊秀)하다’의 한자를 살펴보면, ‘뛰어나다’라는 뜻의 준(俊)에 ‘빼어나다’라는 뜻의 수(秀)라는 한자가 병렬적으로 나란히 이어져 있는 형용사입니다. 말 그대로 뛰어나고 빼어나다는 뜻이지요.
이 단어에는 단어와 관련된 어원이 존재합니다. 옛날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에서는 과거 제도에 준수과(俊秀科)를 두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을 ‘준수’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어원을 알면 중국의 인재 선발 제도로부터 생긴 ‘준수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더욱 잘 기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주로 외모가 빼어난 것을 가리키는 말로 뜻이 축소된 것 같아요.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뛰어나고 빼어나다’보다는 ‘평균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의미로 ‘준수하다’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야구 선수의 기록을 보면서 ‘이 정도 타율이면 준수하다.’라고 표현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용하면 의사소통에 미세한 오류가 생겨납니다. 3할이 넘는 우수한 타율을 가진 타자에게도 준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고 하고, 2할이 조금 넘는 평균 정도의 활약을 보여 약간 아쉬움이 남는 타자에게도 ‘준수하다’라며 똑같이 표현한다면 서로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겠지요.
‘유감’이라는 말만큼 화자(주체)와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되는 단어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언어 표현의 모호함으로 볼 수도 있고 함의의 다양성이라고 분석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유감은 ‘불만’, ‘항의’. ‘섭섭함’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반면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의미로 쓰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 그러나 두 ‘유감’은 동음이의어가 아니라 완전히 같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이렇게나 다르게 해석될까요?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 일각에서 ‘유감’이 ‘사과’의 뜻으로 대신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외교나 정치 분야에서 특정한 용법으로 쓰이면서 그러한 쓰임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공적인 상황뿐 아니라 유명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개인적 발언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각국이 동등한 위치에서 소통해야 하는 정치 언어에서는 직접적인 의미를 담은 ‘사과’, ‘사죄’와 같은 단어는 잘 쓰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응당 사과해야 할 상황에서도 우회적 표현을 선호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주로 선택받는 단어가 바로 ‘유감’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유감은 사과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유감’은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할 때 쓰는 말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