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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 한국 최초의 순교 사제
역사와 문학
서연비람 | 청소년 | 202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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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김대건 신부는 1857년 9월 23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가경자의 칭호를 받았고, 1925년 7월 5일에 성인 위에 오르셨다. 로마교황청에서는 매년 7월 5일을 성 김대건 신부의 축일로 정하고, 그날이 되면 교우들은 김대건 신부님을 위한 기도와 묵상을 한다. 지금 그의 유해는 가톨릭대학 신학부 성당에 모셔져서 신학생들의 교부가 되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순교자들의 피로 우뚝 선 것처럼, 조선교구 또한 신앙 선조들이 흘린 순교의 피로 대성당이 우뚝 섰다. 조선의 대원군 시대를 끝으로 이 땅에는 천주교 박해가 끝났고, 김대건 신부님이 조선 땅에서 새벽에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싶어 하시던 그 열망은 끝내 이루었다.마카오에 있는 그림이 그려진 봉투 석 장, 여덟 쪽 병풍 그림이며 구리로 만든 요강 세 개, 조선에서 순교한 서양 신부님들의 유품이 든 누런 주머니, 이머 스승 리바 신부에게 보내는 조선의 한지 스무 장, 조선 그리빗 세 개, 붓 네 개가 든 꾸러미도 들어있었다. 김대건 신부가 항해 도중 세필로 그린 조선지도는 훗날 1855년 파리 왕립도서관에 입수되어, 프랑스의 「지리학회지」에 발표되었다. 프랑스 생 마르탱 생 마르탱: 프랑스의 성인 수도자.의 「세계지리사전」에는 <김대건의 조선전도> 원본이 수록되어 있고, 그 지도는 현재는 파리국립도서관 지도부에 소장된 품목이다. 김 신부는 중국 선장들과 얘기가 잘 되어 만주에서 조선 입국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매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를 모셔 올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을 기대했다. 그들은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쳐서 등산포로 다시 귀항했다.
그 해 1836년 봄, 모방 신부는 교우들이 숨어 사는 산골 골배마실 골배마실: 지금의 경기도 용인특례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서 소년 김재복을 처음 만났다. 김대건 신부의 어린 시절 이름은 김재복이었지만 훗날 조부가 그에게 큰 뜻을 세우라는 뜻으로 이름을 김대건으로 바꾸어주었다. 당시 은이 마을의 공소에서 미사 첨례를 하던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 이그나시오는 모방 신부로부터 해외에 유학시킬 신학생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때 마침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그는 아들을 모방 신부에게 데려갔다.“바로 이 애가 제 아들 김재복입니다.”모방 신부는 소년 김재복이 착하고 성실한 데다가 순교자의 핏줄을 이어받은 자손이라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15살이었던 김재복은 이미 아버지로부터 신학교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어서 남몰래 마음속으로 그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모방 신부를 만나자 가슴이 뛰었다. 골배마실에서 조부로부터 한문을 배우고 있던 산골 소년 김재복에게 모방 신부는 하늘이 보내준 전령이나 다름없었다.
조선에서 천주교 박해에 나선 좌우정 이지연은 김효임, 김효주를 비롯하여 허계임, 홍금주 등 양반 가문의 딸 십여 명을 전격적으로 참수시켰다. 앵베르 주교와 두 서양 선교사를 자수시키기 위한 압박하기 위해 교우들을 계속 희생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앵베르 주교는 교우들의 희생을 숨어서 지켜볼 수가 없었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어떻게든 손을 써야 했다. 마침내 앵베르 주교는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를 청나라로 보내고 혼자 자수할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두 신부는 앵베르 주교에게 결코 조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먼저 배교자 김순성의 밀고로 포졸 5명이 일꾼으로 위장하고 앵베르 주교를 찾아왔다. 자수를 결심하고 있던 앵베르 주교는 포졸들의 붉은 밧줄을 순순히 받았다. 좌포도청 손계창은 그를 정치범을 체포할 때만 쓰는 붉은 밧줄로 포박해서 연행했다.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각기 새 은신처를 찾아 떠난 후에야 이미 체포되어 감옥에 있던 앵베르 주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라틴어 전문으로 씌어있었다. 「무릇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칩니다. 신부님들께서 아직 배를 타지 않으셨다면 좌포장 손계창에게 자수하기를 바랍니다. 교우는 한 사람도 따라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앵베르 주교는 교우들이 사제로 인해서 계속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알 수 있다. 포청에서는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를 체포하기 위해 앵베르 주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교우들을 대신 계속 처형시키고 있었다.

  출판사 리뷰

마카오에 있는 그림이 그려진 봉투 석 장, 여덟 쪽 병풍 그림이며 구리로 만든 요강 세 개, 조선에서 순교한 서양 신부님들의 유품이 든 누런 주머니, 이머 스승 리바 신부에게 보내는 조선의 한지 스무 장, 조선 그리빗 세 개, 붓 네 개가 든 꾸러미도 들어있었다.
김대건 신부가 항해 도중 세필로 그린 조선지도는 훗날 1855년 파리 왕립도서관에 입수되어, 프랑스의 「지리학회지」에 발표되었다. 프랑스 생 마르탱 생 마르탱: 프랑스의 성인 수도자.
의 「세계지리사전」에는 <김대건의 조선전도> 원본이 수록되어 있고, 그 지도는 현재는 파리국립도서관 지도부에 소장된 품목이다. 김 신부는 중국 선장들과 얘기가 잘 되어 만주에서 조선 입국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매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를 모셔 올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을 기대했다. 그들은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쳐서 등산포로 다시 귀항했다.

그 해 1836년 봄, 모방 신부는 교우들이 숨어 사는 산골 골배마실 골배마실: 지금의 경기도 용인특례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에서 소년 김재복을 처음 만났다. 김대건 신부의 어린 시절 이름은 김재복이었지만 훗날 조부가 그에게 큰 뜻을 세우라는 뜻으로 이름을 김대건으로 바꾸어주었다. 당시 은이 마을의 공소에서 미사 첨례를 하던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 이그나시오는 모방 신부로부터 해외에 유학시킬 신학생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때 마침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그는 아들을 모방 신부에게 데려갔다.
“바로 이 애가 제 아들 김재복입니다.”
모방 신부는 소년 김재복이 착하고 성실한 데다가 순교자의 핏줄을 이어받은 자손이라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15살이었던 김재복은 이미 아버지로부터 신학교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어서 남몰래 마음속으로 그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모방 신부를 만나자 가슴이 뛰었다. 골배마실에서 조부로부터 한문을 배우고 있던 산골 소년 김재복에게 모방 신부는 하늘이 보내준 전령이나 다름없었다.

조선에서 천주교 박해에 나선 좌우정 이지연은 김효임, 김효주를 비롯하여 허계임, 홍금주 등 양반 가문의 딸 십여 명을 전격적으로 참수시켰다. 앵베르 주교와 두 서양 선교사를 자수시키기 위한 압박하기 위해 교우들을 계속 희생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앵베르 주교는 교우들의 희생을 숨어서 지켜볼 수가 없었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어떻게든 손을 써야 했다. 마침내 앵베르 주교는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를 청나라로 보내고 혼자 자수할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두 신부는 앵베르 주교에게 결코 조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먼저 배교자 김순성의 밀고로 포졸 5명이 일꾼으로 위장하고 앵베르 주교를 찾아왔다. 자수를 결심하고 있던 앵베르 주교는 포졸들의 붉은 밧줄을 순순히 받았다. 좌포도청 손계창은 그를 정치범을 체포할 때만 쓰는 붉은 밧줄로 포박해서 연행했다.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각기 새 은신처를 찾아 떠난 후에야 이미 체포되어 감옥에 있던 앵베르 주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는 라틴어 전문으로 씌어있었다.
「무릇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칩니다. 신부님들께서 아직 배를 타지 않으셨다면 좌포장 손계창에게 자수하기를 바랍니다. 교우는 한 사람도 따라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앵베르 주교는 교우들이 사제로 인해서 계속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알 수 있다. 포청에서는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를 체포하기 위해 앵베르 주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교우들을 대신 계속 처형시키고 있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유홍종
서울 출생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과 졸업기독교방송 프로듀서와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를 거쳐 전업 작가로 활동. 1974년 제14회 『월간문학』 신인상 공모에 시 「달빛소리」로 신인상 수상. 1976년 월간 『현대문학』의 소설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1984년 장편소설 『불의 회상』으로 대한민국 문학상 소설 부문 신인상 수상.1986년 중편소설 『서울에서의 외로운 몽상』으로 제4회 소설문학 작품상을 수상.주요 작품 『새롭게 읽는 명성황후』, 『왕국의 징소리』, 『하얼빈 리포트』, 『서울무지개』, 『조용한 남자』, 『수녀 아가다』, 『유리열쇠』, 『아사의 나라』, 『천년의 눈물』, 『불새』, 『슬픔의 재즈』, 『치자꽃 전설』,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등.

  목차

머리말

제1장
등산포 일기
추억의 그림자
골배마실에서 만나다
하느님은 누군가
금지된 하늘
성 이그나시오의 순교
샤스땅의 편지
마카오의 신학교
커다란 종이호랑이
국경에서 만난 밀사
어서, 일어나 걸어라
만주 횡단

제2장
뱃길을 열어라
나침반과 항해지도
요나의 돛배
땅에서 맺힌 것은 땅에서 풀어라
내가 너를 선택했다
라파엘 호의 표류
숨어있는 마을
서로의 천사가 되다
주여 당신이름
나무 조각에 붙은 영혼
붉은 포승줄
세계지도를 바치다
김대건 구명 탄원서
사랑하는 형제여

김대건 해설
김대건 신부 연보
김대건을 전후한 한국사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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