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코로나를 건너는 교실 탐구 생활
오늘도 교실은 충전 중 코로나 19로 모두가 고단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우리 청소년들은 어떤 모습으로 지냈을까?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장난을 치는 소소한 재미마저 사라진 학교, 축제와 체육대회, 수학여행, 심지어 입학식과 졸업식마저 사라진 학교에서 혈기 왕성한 십대 청소년들은 어떻게 버텨왔을까?
이 책의 저자인 정지은은 교실에서 만난 청소년들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꾸준히 기록해 왔다. 『낯선 교실 탐구 생활』은 그 두 번째 기록으로, 코로나 여파로 낯설게 변한 교실 풍경을 섬세하고 따뜻한 눈길로 잡아낸다. 전작 『교실 수면 탐구 생활』에서 보여준 무심한 듯 다정한 시선과 유쾌하면서 무겁지 않은 태도는 이 책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여기에 더해,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안타까움과 혼란스러운 감정 또한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아이들이 사라진 학교에서 발견한 낙서를 ‘고대 유물’처럼 쓸쓸히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오랜만에 등교한 아이들이 마스크를 쓴 채 조용히 지내는 모습이 그려지고, 한 번도 맨얼굴을 본 적 없는 아이들을 급식실에서 마주하고는 ‘경이로움’마저 느끼는 장면이 이어진다.
때로는 한 발 떨어져서 아이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유머 감각을 발휘하여 혼란의 한 가운데를 버텨내는 저자는 코로나로 달라진 교실 풍경의 변화에서 끝내 긍정적인 미래를 예견한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파악하는 데에 예전보다 몇 배로 긴 시간이 필요해져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여전히 서로가 낯설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의를 갖추어 대하게 되었다. 학생과 교사뿐 아니라 학생들끼리도 조심스럽게 대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쉽게 친밀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 부정적인 현상이지만 타인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뉴노멀이 되는 중이라고 본다면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_‘작가의 말’ 중에서
비대면 문자나 전화 통화가 주를 이루게 된 관계에서도 저자는 답답하다고 한숨만 쉬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예의를 갖추어 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감탄하며 서로가 ‘저마다의 사정’을 자연스럽게 배려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온라인 수업에서 출석을 확인할 때 ‘네’라는 짧은 음절조차 입으로 말하지 않고 채팅창에 입력하는 아이들의 태도를 문제 삼는 대신, 문자가 더 인간의 본능에 어울리는 소통 수단임을 쿨하게 인정하고 소중하고 한정적인 입말은 이제 그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에게 쓰이게 되었노라고 말한다.
시작부터 마스크 쓴 채로 관계를 맺은 우리들, 무슨 말을 하건 상대의 눈을 깊게 들여다본다. 얼굴의 반쪽만으로 상대를 파악해야 하기에 빤히 본다. ‘빤히’라기보다는 ‘지그시’가 맞을까. “너 이번 주 주번이야.”라든가 “여기도 쓸어야지.” 같은 말도, “나는 네가 훌륭한 학생이라고 내내 생각해 왔어.”라고 말하듯이 정성껏 말할 수밖에 없다. “지우개 좀 빌려줄래?” 같은 말도 “오래전부터 널 지켜봐 왔어.”라고 말하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심스레 최대한 잘 들리도록 말하게 된다.
_ 본문 중에서
꽃이 져야 잎이 보이듯 팬데믹으로 시작된 변화지만 그 안에는 긍정적인 변화도 깃들어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책에 수록된 100여 컷의 정성스런 드로잉을 바라보며 독자는 다정한 거리두기로 혼란의 한가운데를 통과해낸 십대들을 뭉클한 마음으로 응원하게 될 것이다.
잠 못 이루는 교사 잠 못 이기는 학생들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한 교실의 밀당 『낯선 교실 탐구 생활』은 네 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오랜만이야’에서는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 아이들이 사라진 학교와 온라인 수업, 그리고 오랜만에 등교한 아이들의 모습이 고루 담겨 있다. 저자는 학생이 사라진 빈 교실에 홀로 남아 학교가 학생들을 위한 자리임을 새삼 깨닫고, 온라인 수업을 하며 서로가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코로나로 인해 낯설어진 교실 풍경이 나쁜 쪽으로만 향하고 있지 않음을 말한다. 무려 4샷이 들어간 커피를 마셔야만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만큼 피로가 누적된 상태지만, 냉동실에 책을 얼려 달라는 ‘이상한’ 부탁을 ‘진지하게’ 하는 아이들이 있어 지치지 않고 버틴다.
2부 ‘달라졌네’에서는 마스크 세상이 된 이후 달라진 일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스크가 만들어 낸 거리 덕분에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로 말하는 교사와 학생들에게서 지금껏 ‘존재한 적 없던 독특한 미학을 지닌 커뮤니케이션’을 발견하고 모종의 설렘을 느끼는 한편, 마스크에 갇혀 지쳐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더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 모두에겐 약간의 바나나 우유가 필요하다. 건강식품을 가장한 달콤한 어떤 것.”이라며 바나나 우유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3부 ‘변함없구나’에서는 코로나 시대에도 변함없이 잠에 굴복당하는 학생들의 다채로운 수면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주문처럼 ‘일어나’라는 문구가 새겨진 옷을 입어도, 시험이나 성적에 대한 불안도 쏟아지는 잠을 말릴 수는 없다. 재해에 인재와 자연재해가 있듯 잠에도 참을 수 있는 잠과 참을 수 없는 잠이 있다는 걸 알기에 그저 두고 볼 수밖에.
4부 ‘그렇게, 우리’에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학생들과의 일상이 펼쳐진다. 지극히 사무적인 순간에도 자기만의 양념을 치며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K,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일 아침 칠판 주변과 분필을 가지런히 정리해 산뜻한 기분을 안겨주는 H, 집에 토끼 간을 놓고 왔는지 매번 약을 가지러 간다며 외출 허락을 구하는 Q 등 다양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 밖에도 책의 맨 뒤에는 ‘낯선 세상에 울렁거릴 때’와 ‘낯선 세상에 설렐 때’라는 코너를 각각 실어 ‘정샘의 추천작’을 소개하고 있다. 소설과 시, 그림책, 만화에서부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와 웹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고 있으니 변해가는 세상, 다가올 미래가 두렵거나 기대될 때 펼쳐보거나 참고하면 좋겠다.
코로나 시대에도 잠 못 이루는 교사와 잠 못 이기는 학생 사이의 밀당은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따스한 믿음이 서려 있다. 개별적인 상호작용이 대폭 줄었지만, 그들을 ‘10대 청소년’이라는 관념적 틀에 가두지 않고 ‘김철수’ ‘이영희’라는 고유한 이름을 지닌 각각의 존재임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저자는 그래서 아이들을 때로 ‘젊은 분들’이라고 칭하며 그들에 대한 존중을 드러낸다. 코로나 시대에도 이 ‘젊은 분들’은 잘 먹고 잘 졸면서 지냈다. 아이들을 하나의 테두리로 묶어 단일하게 규정할 수 없듯, 아이들이 겪어낸 힘든 시절 또한 함부로 단정해서 몇 마디로 말할 수 없음을 이 책을 덮고 난 독자는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