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여성으로 태어나서’의 네 번째 주인공은 『도로시 데이』로, 미국 대공황 시절에 ‘가톨릭 노동자 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해, 가톨릭이 노동자들과 함께한다는 사상을 심은 인물이다. 도로시 데이는 어릴 때부터 세상의 불공정함과 부당함에 늘 의문이 많았다.
이 책은 번민하며 하느님을 부정하던 도로시 데이가 어떻게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가톨릭을 노동자 속으로 들어오게 했는지, 거기에 그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이야기한다. 또한, 도로시 데이가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서 <가톨릭 노동자> 신문을 창간하고, 환대의 집과 농장공동체를 만들며 그들과 함께한 과정을 묘사한다.
출판사 리뷰
평생 하느님과 노동자에 붙잡혀 산 여성
도로시 데이는 언제나 노동 운동 중심에 있었고, 대공황 당시 종교는 노동 운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하느님을 거부했고 하느님에게서 도망치려고 애쓰고 또 애썼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이 노동자와 함께하도록 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고, 하느님을 대신해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으며, 그들과 함께 숨 쉬며 그들과 함께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거리로 나가 시위했다. 도로시 데이는 늘 가톨릭교회가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보호하고 치유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대모
1929년에 미국에서 시작한 대공황은 10년이나 지속하였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나 거품이 점점 두터워져 시야를 가렸고, 부실기업의 주가마저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러던 주가가 매일매일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며 기업이 줄줄이 파산했다. 고스란히 책임을 덤터기 쓴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렸고, 하루 종일 일거리를 찾아다녀도 부질없었다. 노동력이 남아돌자 여기저기서 임금 착취와 열악한 노동 환경이 생겨났다. 그러자 곳곳에서 이를 개선할 것을 주장하는 시위가 잇달았고, 이를 지지하고 사실을 전달하는 중심에 도로시 데이가 있었다. 그녀는 진보 성향의 기자였고, 가톨릭교도였다. 당시 종교는 노동 운동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진보주의자 중에 종교인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 노동자> 신문을 창간하고 ‘환대의 집’을 만드는 등 ‘가톨릭 노동 운동’을 전개했고, 결국엔 가톨릭이 노동자들 속으로 들어와 그들을 보호하고 영혼을 치유하게 했다. 그녀의 바람은 오직 하나, 가톨릭이 가난한 노동자와 함께하며 그들의 몸과 영혼을 달래주는 것이었다.
피터 모린과의 운명적 만남
도로시 데이의 삶은 피터 모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만큼 피터 모린과의 만남은 도로시 데이에게는 인생의 특이점이었다. 삶의 방향을 잡은 도로시 데이에게 더는 종교적인 방황은 없었다. 그러나 노동 운동을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 단체를 어떤 방식으로 노동자들 속으로 이끌지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런데 피터 모린이 스스로 찾아와 가톨릭 신문과 무료 급식소를 만들자는 제안을 한다. 피터 모린의 이상적인 제안에 현실적인 도로시 데이의 계획이 더해져서 <가톨릭 노동자> 신문과 ‘환대의 집’이 탄생한다. 이것은 가톨릭에 전해질 그녀의 영원한 유산이자 상징이다.
나를 성인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1973년 8월의 어느 날 소외된 노동자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용맹스러운 여성, 도로시 데이가 감옥에 갇혔다는 신문 기사가 났다. 기사 내용은 마치 전사와 같은 여성을 묘사하고 있었지만,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면 그 여성은 노쇠하고 지친 노인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로시 데이는 75세였고,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수감이었다. 수감 직후 인터뷰에서 “그곳이 교도소만 아니라면 쉬기에는 그만인 장소였어요”라고 말해, 듣는 이의 눈시울을 적셨다.
이렇게 도로시 데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이후 수중에는 장례를 치를 돈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또 고인의 장례식이 11시로 잡힌 까닭은 그 시간이 무료로 제공되는 아침 식사가 끝나고 부엌을 청소한 뒤 점심 식사를 준비하기 전까지 약간의 여유가 있는 시간대였기 때문이었다. 죽음 이후까지도 그녀는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도로시 데이는 세상을 떠나고 ‘하느님의 종“ 칭호에 이어 ’성인품‘ 추대를 받았지만, 아마도 기뻐하진 않았을 것이다. 생전에 자신을 성인으로 우러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나를 성인으로 부르지 마세요. 나는 그렇게 쉽사리 물러나고 싶지 않답니다.”
도로시는 종교가 삶의 방해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가 마치 아편이나 마약과 같은 약물중독 같아서
하루빨리 거기서 벗어나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신약에 이런 글귀가 있다.
“하인으로 일하는 사람은 주인에게
진정 두려운 마음으로 복종하거라.
착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뿐 아니라
고약한 주인에게도 그렇게 하라.”
도로시는 시위 현장에 가톨릭 교인도
가톨릭 지도부도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공허함이 밀려왔다.
가톨릭 교인이 된 이후로 자신의 활동은
말할 수 없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었다.
거리에서 동지들이 투쟁하는 동안
자신은 글쓰기와 기도로 시간을 보냈다.
착잡함이 밀려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커다란 의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왜 이미 발생한 사회악을 바로잡는 데는
그토록 많은 자원을 쏟아부으면서
그것을 사전에 방지할 생각은 안 할까?
노예들을 도울 것이 아니라,
노예제도 자체를 없애는 그런 정책은 왜 펼치지 않는가.
사회질서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가톨릭 성인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1933년 5월 1일 노동절 새벽,
도로시와 세 명의 젊은 자원자가
신문을 들고 유니언 광장으로 나갔다.
그날은 집회가 예정되어 있어서
공산당 시위자 5만 명이 모여들었다.
여기서 도로시와 세 젊은이는
<가톨릭 노동자> 창간호를 팔기 시작했다.
긴장되고 두근거리는 순간이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윤해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위대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행동에서 강력한 영감을 얻어 정신적인 멘토를 찾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윤해윤은 전기에 관심이 커졌고, 전기 관련 번역과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가 급기야 전기 작가로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도로시 데이』는 『이태영』, 『에멀린 팽크허스트』, 『왕가리 무타 마아타이』, 『김만덕』, 『말랄라 유사프자이』, 『헬렌 켈러』에 이은 여성 인권 책으로, 도로시 데이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분투한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목차
시작하면서
1. 종교는 아편이다
2. 난 좌파지만 성경이 필요해
3. 사랑, 그 달콤하고 처절함이여
4. 날 위한 이별
5.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기도
6. 자발적 가난
7. 가톨릭 노동자
8. 환대의 집
9. 농장공동체
10. 나는 전쟁에 반대한다
11. 할 일은 다 마쳤다
12.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13. 난 쉽게 물러나고 싶지 않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