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푸른문학상 수상 작가 김영리 신작!
인간의 표정을 가진 마지막 로봇 팬이와
로봇이 되기로 한 소년의 우정과 성장 이야기!
“우리는 ‘진짜 나’로 살아가야 해.”
‘예술’을 하기 위해 ‘고통’을 느끼려는 로봇,
‘고통’을 잊기 위해 ‘로봇’이 되려는 아이
두 괴짜들의 예측 불가 성장기!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미래. 인간들에게도 로봇들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중뿔난 괴짜 ‘로봇-5089’는 한 가지 난제에 부딪혔다. 로봇에게 금기시되는 예술을 꿈꾼 대가로 자발적 리셋을 택하거나, 파기될 처지에 놓인 것. 그러나 로봇-5089는 스스로에게 ‘팬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리셋을 거부한다. 한편, 학교폭력을 당해 마음의 문을 닫게 된 열 살 소년 ‘워리’는 자신을 로봇이라고 주장한다. 끈질긴 요구로 로봇 심리학자 ‘수젼’과 만난 워리의 요구는 단 하나. “리셋해주세요.”
자신을 찾기 위해 예술을 선택한 로봇과 자신을 잊기 위해 로봇이 되길 선택한 소년,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고통을 느끼고 싶은 로봇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봇이 되기로 한 소년. 세상에 겉도는 두 ‘모난 돌’의 예측 불가 우정과 성장 스토리가 펼쳐진다!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는 로봇과 소년의 우정,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압도적 몰입감!코앞으로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시대. 머지않은 미래에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 그중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로봇이 있다면 어떨까? 고통을 꿈꾸는 로봇과 고통을 잊고자 하는 소년,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두 인물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친구가 되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성장해간다. 참신한 상상력이 빚어낸 『팬이』는 마치 한 편의 웹툰, 영화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빼어난 이야기성과 압도적 몰입감을 선사하는 『팬이』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로봇-5089는 결심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더는 숨어서 하지 않기로.
‘진짜’로 살기로.
-본문에서
‘꿈을 포기하고 리셋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파기된다’는 대기업 아인사 회장의 일방적인 통보와 강요에도 팬이는 자신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을 만든 로봇 개발자가 회유해도, 슬럼프에 빠져서 더 이상 노래를 만들 수 없어도, 팬이는 주저앉지 않고 마지막까지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다. 근미래 시대 로봇이라는 다소 ‘독특한’ 주인공임에도 어쩐지 자꾸 그에게 마음이 가고, 응원하게 되는 것은 오늘날의 청소년들과 같이 자신의 목표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팬이와 함께하며 고통을 잊기 위해 리셋을 바라던 워리가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고 내면적 성장을 한 뼘 더 이루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팬이』가 전해주는 감동에 젖어든다.
서로 다른 모습이어도, 각자 목표가 달라도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의 상처를 보듬고, 타인을 위한 마음을 가지며 나 자신도 성장하게 된다. 세상에 겉도는 친구들의 예측 불가 성장기, 『팬이』를 지켜보는 독자들 역시 책을 덮으며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졌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로봇‐5089, 오늘…….”
“난 로봇‐5089가 아니야.”
생각지도 못한 말에, 그의 표정이 글자 ‘오?’처럼 변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자신을 부정하는 건 위험했다. 특히나 최근 로봇‐5089의 행동을 볼 때 더더욱.
곧이어 로봇 심리학자가 아인사 회장에게 은밀하게 속닥거리는 게 들렸다. 의미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말소리가 작았다. 미간을 찌푸리고 거울 너머의 소리에 집중하던 그는 인이어를 귀에서 빼버린 뒤, 로봇‐5089에게 바짝 다가가 말했다.
“넌 로봇‐5089가 맞아. 내가 5,089번째로 만든 로봇이니까.”
(…)
그는 돌덩이를 삼킨 듯 무거운 마음으로 로봇‐5089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널 뭐라고 불렀으면 좋겠니?”
“팬이.”
그건 모두가 바라는 답이 아니었다.
“로봇은 스스로 이름을 붙이면 안 돼.”
“내가 나한테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리셋하려는 거야?”
“그 이상한 이름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날 리셋할 거야?”
로봇‐5089는 집요했다. 이건 업그레이드나 정기 점검 같은 게 아니니까. 로봇 엔지니어는 로봇‐5089로부터 등을 돌린 채 분명하게 말했다.
“오늘은 하지 않을 거야.”
로봇‐5089는 말이 없었다. ‘오늘은’이란 조건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이가 스스로를 로봇이라고 주장한 건, 아홉 살 늦가을 즈음이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부부는 학교도 휴학시키고 방법을 찾아 고심했지만, 아이는 처음부터 계속 로봇 심리학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할 뿐이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정신과 상담도 여러 곳에서 받았지만, 그것이 역효과가 되어 그때부터 아이는 입을 꽉 닫아버렸다.
오늘에서야 남자는 아이가 지금껏 로봇 심리학자를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를 알아냈다. 리셋 때문이었다. 로봇 심리학자의 결정으로 문제 로봇들이 자발적 리셋을 할지 파기를 할지 결정된다는 기사를 아이가 인터넷에서 본 게 아닐까, 남자는 추측했다.
요즘 남자는 대본도 없이 즉석에서 애드리브로 연기하는 것 같았다.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남자에게 요구하는 건 아버지가 아니라 로봇 개발자였다.